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에 만든 '구남매 가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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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에 만든 '구남매 가족신문', 1999년 2월 20일자에서 만난 참 기특했던 다섯살 딸【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족신문 1면ⓒ 강창석아주 오래전 밀레니엄이 오기 전에 잠깐 가족 신문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우리 구 남매들의 이야기를 담는 신문이기에 신문의 제호는 '구남매집'이었다.구 남매나 되는 대가족이지만 성장을 하면서 삶의 터전을 찾아 전국에 흩어져 산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각자가 살아가는 소식을 전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효율적으로 전해줄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다. 그러나 신문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각자 삶에 바쁜 형제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게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이 모여서 얘기할 때는 항상 소환되는 아름다운 추억거리다.어제 모처럼 어머니 집을 정리하다가 방 제일 구석 케케묵은 책장에서 눈에 익은 종이를 발견했다. 1999년 2월 20일 발행한 구 남매집 제4호 신문이었다.'구남매집'은 내가 1998~1999년까지 분기에 1번씩 발행했던 가족 신문이다. 신문은 PC에서 워드로 제작하고, A4용지로 출력한 다음 우편으로 보냈다. 지금같이 집마다 프린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카톡도 없던 시절이다. 이메일도 그리 익숙하지 않았기에 온라인으로 보내는 것은 적절치가 않았다. 실감 나게 신문이라는 느낌으로 받아 볼 수 있게 하자고 고민해 낸 방법이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었다.20여 년을 넘게 삭힌 A4용지는 오랜 세월을 지켜온 듯 사방이 누렇게 변해있었다. 그런데도 기사 내용은 그때 그 모습 선명하게 그대로 있었다. 1999년 2월 당시 우리 구 형제들의 모습과 그 자녀들의 삶의 기록들이 생생하게 적혀있었다. 신문을 펼치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26년 전의 세상으로 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우리 구남매와 그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어느 집 하나 빠짐이 없이 모두 기록돼 있었다. 심지어는 조카들이 감기 걸린 이야기까지 있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도 기록돼 있었다. 새삼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는 순간이었다.A4용지 3장의 앞뒤를 2단으로 가득 채운 기사 중 하나를 옮겨본다. 지금은 서른 넘은 나이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둘째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에 만든 '구남매 가족신문', 1999년 2월 20일자에서 만난 참 기특했던 다섯살 딸【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족신문 1면ⓒ 강창석아주 오래전 밀레니엄이 오기 전에 잠깐 가족 신문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우리 구 남매들의 이야기를 담는 신문이기에 신문의 제호는 '구남매집'이었다.구 남매나 되는 대가족이지만 성장을 하면서 삶의 터전을 찾아 전국에 흩어져 산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각자가 살아가는 소식을 전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효율적으로 전해줄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다. 그러나 신문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각자 삶에 바쁜 형제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게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이 모여서 얘기할 때는 항상 소환되는 아름다운 추억거리다.어제 모처럼 어머니 집을 정리하다가 방 제일 구석 케케묵은 책장에서 눈에 익은 종이를 발견했다. 1999년 2월 20일 발행한 구 남매집 제4호 신문이었다.'구남매집'은 내가 1998~1999년까지 분기에 1번씩 발행했던 가족 신문이다. 신문은 PC에서 워드로 제작하고, A4용지로 출력한 다음 우편으로 보냈다. 지금같이 집마다 프린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카톡도 없던 시절이다. 이메일도 그리 익숙하지 않았기에 온라인으로 보내는 것은 적절치가 않았다. 실감 나게 신문이라는 느낌으로 받아 볼 수 있게 하자고 고민해 낸 방법이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었다.20여 년을 넘게 삭힌 A4용지는 오랜 세월을 지켜온 듯 사방이 누렇게 변해있었다. 그런데도 기사 내용은 그때 그 모습 선명하게 그대로 있었다. 1999년 2월 당시 우리 구 형제들의 모습과 그 자녀들의 삶의 기록들이 생생하게 적혀있었다. 신문을 펼치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26년 전의 세상으로 돌아간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우리 구남매와 그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어느 집 하나 빠짐이 없이 모두 기록돼 있었다. 심지어는 조카들이 감기 걸린 이야기까지 있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도 기록돼 있었다. 새삼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는 순간이었다.A4용지 3장의 앞뒤를 2단으로 가득 채운 기사 중 하나를 옮겨본다. 지금은 서른 넘은 나이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둘째 딸의 이야기다.잠깐! 여기서 우리 집 둘째(이름 대신 사용)의 무용담원래 둘째네 집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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